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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의 정체성



교민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지면을 통해서 안부 여쭙니다. 교육칼럼에 관한 원고 요청을 받고 어떤 주제로 여러분과 소통하고 공감할까, 원고 마지막 날까지 고민을 하다가 저와 제 가족 주위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상들을 나누고 그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며 서로 좋은 대안들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여겨 몇 자 적습니다.

저에겐 중3(8th Grade)인 딸과 초등 4학년(4th Grade)인 아들이 있습니다. 둘 다 평일 일과 후엔 태권도를 배우고 주말엔 달라스한국학교에서 한글 및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자랑할 건 제 딸의 경우 비록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어에 매우 능통해서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비교해도 한글 실력이 그리 뒤지지 않는 수준이고, 제 아들의 경우는 그에는 못 미치지만 한글로 의사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수준 정도는 됩니다.  

제 아이들에 관해 좀 더 나눠보면 큰 아이는 제가 가난한 법대 학생일 때 태어났고, 작은 아이는 변호사로 경제 활동을 하던 시기에 태어나서 아이들이 비록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가정 형편이나 주변 환경이 매우 차이 나는 특이한 남매입니다. 큰 아이는 제가 학생일 때 제 아내가 간호사로서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관계로 주로 제가 돌봐야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학업과 육아를 함께 해야 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빠가 학교 가고 엄마가 병원에 일하러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린이 집이나 여기 저기 지인 집에 가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샘이죠.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주위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빠르고 상황 파악도 정확한 아이로 잘 성장한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제 아들은 아빠 엄마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태어나서 별로 부족함 모르고 유복하게 유년을 보낸 조금은 ‘스포일’(spoil)된 아이입니다. 매 주 토요일에 한국학교에 가기 전 항상 저에게 다른 친구들은 집에서 다들 노는데 왜 나는 토요일에 또 한글을 배우러 가야 하냐고 항상 따져 묻는 아이입니다. 그 때마다 한글을 왜 배워야 하는지 거창한 설교를 늘어놓지만 설득에 효과가 있었는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 아이들에게 고민거리가 생긴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겪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겁니다. 제 가족이 사는 이웃 중에 조금 보수적인 백인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아들 생일날 아이들 사촌이 놀러 와서 초등학교 운동장에 놀러 가는데 제일 빠른 지름길이 이 할머니가 사시는 집 앞으로(실제론 이 할머니의 사유지) 가로질러 가는 것입니다. 평소에 아들이 아들 친구들(모두 한 동네에 사는 또래 백인 아이들)과 함께 무수히 다녔던 길이기에 그 날도 무심코 그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날 이 할머니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셨는지 제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말들을 하셨더군요. 바로 제 아이들에게 너희들 영어는 할 줄 아느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는 등등 이민 1세인 우리들이야 늘 듣던 소리여서 그저 그런 질문이지만,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제 아이들에겐 다소 충격적인 질문을 한 셈이죠. 특히 제 아들에겐 조금 더 충격적이었나 봅니다. 여태 피부색으로 인해 차별성 언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처음 서러움을 느껴 본거죠. 
나중에 아이들이 집에 와서 억울해 하기에 타인의 사유지에 허락 없이 가로질러 가는 것은 안 되는 거라 교육시킨 후 아이들이 왜 그런 차별성 소리를 들어야 했는지 구체적으로 밥상머리 ‘소크라테스식’ 문답을 벌였습니다. “평소에 너희는 코리안 어메리칸이다. 그러니 너희 모국어인 한글을 잊지 말고 배우고 토요일에 한국학교 빠지지 말고 다녀라.” 등등  아빠 엄마가 하는 말들을 잔소리로만 여기던 아이들이 그 날 만큼은 유달리 집중하여 대화에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아이들에게 찾아온 조그만 차별 대우가 아이러니하게도 제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미국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좋은 기회가 된 셈이죠.

평소에 유대인들이 후세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교육시키고 문화유산을 물려주는 방법들에 경의를 표하던 저에게도 “아하” 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똑같이 타국에 살고 있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어떻게 저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이들에게 전하며 가르치는데 우리보다 몇 배는 뛰어날까 궁금해 하던 저에게 이웃 할머니와 제 아이들이 고맙게도 답을 해준 겁니다.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며 차별대우 받았을 그들, 그 와중에 똘똘 뭉쳐야 살 수 있고 그 원동력은 종교 및 언어를 포함한 문화유산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일찍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씨름하며 한글을 가르치시는 한글학교 선생님들 및 관계자 여러분. 비록 지금은 아이들이 말도 안 듣고 말썽 피워도 언젠가는 아이들이 정체성을 고민할 때 여러분의 노고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걸 보람 삼아 힘 내 주시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이 글을 읽는 학부모님께도 저에게 찾아왔던 “아하” 하는 순간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원영
달라스 한국학교 전 이사장
김원영 로펌 대표 변호사
주달라스 영사출장소 자문 변호사

http://www.newskorea.com/bbs/board.php?bo_table=education&wr_id=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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